top of page
slide_01.jpg

Book & Author

EXHIBITION

Open Gallery

DP-112.jpg

FEATURED STORY

BOOK & AUTHOR

Story of BLUENOTE

Video Gallery

전체 동영상

Channel info

People & Blogs, Nonprofits & Activism

photography, bluenotephoto.com, portrait, documentary, landscape, still-life

전체 동영상

[안성시미륵- 05시내,양성권역]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을까

Read more [#안성시미륵- 05시내,양성권역]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나요 안성은 전국적으로 미륵이 많기로유명하여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지금까지 미륵으로 밝혀진 불상이 17곳인데 그중 죽산의 남산미륵과 금광면 먹뱅이미륵은 도난당하여 현재 없으며. 도림리미륵은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속한다.따라서 현재 안성시에남아있는 미륵은 14곳에 위치한 23기이다.기솔리 석불입상이 2 기, 아양미륵이 2 기. 궁예미륵이 3 기 등 쌍미륵이나, 협시불, 사방불 과 같이 4 기가 같이 모셔져서 숫자로는 더 많다. #아양동_보살입상_석불입상 아양동은 원래 아롱개마을이라고 했는데 마을 앞을 흐르는 안성천 때문에 안개가 자주 끼는데 이럴 때는 앞이 아롱아롱하게 보여 아롱개마을이라고 한다.설화에 따르면 젊은 장수가 하루는 도기동 탑산에서 뛰어올라 알미산을 한발로 디디고 다시 비봉산으로 뛰다가 실수로 아양미륵의 머리를 나막신으로 차 미륵의 머리가 부러지게 되었다고 한다.이로 인하여 이후 장수는 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고, 미륵은 아양동 사람들에 의하여 보수되었는데 지금도 남아있는 여미륵의 목에 나 있는 흔적은 그때 입은 상처라고 한다.한편 다른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때 수해를 입어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졌는데 꿈에 고쳐달라는 현몽을 하여 마을 주민들이 두레를 만들어 쌀을 거두어 복구했다고 한다.이 미륵을 바로 세우고 난 후로 마을에 재앙이 없고 6·25때 참전한 사람들도 다치지 않고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안성공원_석불좌상 일부 사람들은 안성공원석불좌상을 미륵불로 신봉하기도 한다.1900년 무렵에 만들어진 안성 시내 중앙에 있는 안성낙원공원은, 일제 강점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수목이 울창하고 중심에 동일정이라는 조그만 정자 하나와 군집한 비석들과 함께 신명신사라(神明神社)는 일제의 신사가 있었던곳이다.1932년 공원 내에 시설이 별로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시내 유지들의 기부로 정자 세 개를 짓고 죽산에 있는 석불과 보개면에 있는 고탑 등을 옮겨오고 한편으로 공원 안에 있던 연못을 개축하고 다양한 꽃나무를 심는 등 면목일신하게 되었다.이때 죽산에서 가져온 불상이 바로 안성공원석불좌상이다. #용화사_석조여래입상 용화사(龍華寺)는 1902년 건립되었으며 안성의 6대 전통사찰 중 하나이다.용화전에 있는 미륵을 남미륵이라고 하고 미륵뒤에 있는 작은 돌을 여미륵이라고 부른다.설화에 따르면 옛날 남녀 미륵불이 땅속에서 솟아날 때, 지나가는 행인이 여미륵 머리 위에 소변을 보는 바람에 키가 크지 못하고 미륵불이 못 되었다고 한다.정월이 되면 이 미륵에 특이한 점을 치는데, 쌀을 한 움큼 쥐고 미륵의 표면에 붙이면 미륵의 오돌토돌 한 면에 한 톨이 붙기도 하고 반 톨이 붙기도 하는데 한 톨이 붙으면 아들, 반 톨이 붙으면 딸을 낳는다고 전해진다.원래 이 미륵은 백색 수성페인트로 전체를 칠하고, 이목구비는 흑색으로 칠했던 것이나 2004년 화재로 인해 전체적으로 덧칠해 있던 시멘트가 벗겨져 원래의 모습을 드러냈다.옛날 법당 앞에 있는 팽나무가 태풍에 넘어지면서 미륵불의 머리를 쳐서 땅속으로 가라앉아 키가 작았는데 화재 이후에 지상으로 노출해 키가 커졌다 한다. #양성면_석조여래입상 양성면 구장리 마을입구 수백년 된 팽나무 옆에는 미륵불로 신봉되고 있는 안성시향토유적 제39호 양성석조여래입상이 자리하고 있다.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는데 남녀 한 쌍의 미륵불이 만들어졌으나 언제인가 홍수 났을 때 여미륵은 떠내려가 현재 덕봉리 입구에 묻혀 있으며, 남미륵만이 이곳에 남아 있다고 전해 진다. #경기문화재단, #대안문화학교달팽이, #푸른노트

Nonprofits & Activism

[안성시미륵- 04대덕권역]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을까

Read more [#안성시미륵- 04대덕권역] #그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나요 안성은 전국적으로 미륵이 많기로유명하여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지금까지 미륵으로 밝혀진 불상이 17곳인데 그중 죽산의 남산미륵과 금광면 먹뱅이미륵은 도난당하여 현재 없으며. 도림리미륵은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속한다.따라서 현재 안성시에남아있는 미륵은 14곳에 위치한 23기이다.기솔리 석불입상이 2 기, 아양미륵이 2 기. 궁예미륵이 3 기 등 쌍미륵이나, 협시불, 사방불 과 같이 4 기가 같이 모셔져서 숫자로는 더 많다. #죽리_석조여래입상 대덕면 죽리 외평마을 입구 700년 된 엄나무 아래의 죽리석조여래입상은 마을에서는 미륵으로 모시고 있다.이 마을에서는 매년 9월 초에 날을 잡아 미륵제를 지낸다.미륵제를 처음 지낸때는 약 20년 전으로 2002년 경기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되고부터라고 한다.이 미륵이 있는 외평마을은 안성천과 직선거리 약 130m밖에 떨어지지 않아 옛날부터 홍수가 나서 하천이 범람하면 마을이 항상 수해를 입는 곳이었다.이에 마을에서는 홍수가 나지 않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세운 미륵이다.그러나 안성천 제방을 보강한 이후로는 홍수의 위험이 적어지면서 미륵의 관심도 줄어들고 있는 상태에서 문화재로 지정되고 난 이후 마을은 미륵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대농리_석불입상 대덕면 대농리에있는 이 미륵은 동글동글하여 후덕하게도 생겼다.마치 제주도의 하루방 같기도하고 돌장승같기도한 모양이다.원래. 이 미륵의 우측에는 아들., 좌측에는 딸로 불리는 조그만 불상이 두 기가 있었으나. 십여년 전 어느 날 밤 도둑이 우측의 아들을 훔쳐 갔다고 한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낮고 평평하지만 미륵이 있는 곳을 마을 사람들은 미륵산이라고 한다.전설에 따르면 미륵산의 소나무 안에는 큰 묘가 있었는데 그것을 미륵이 눌러서 과거급제를 못 한다고 살구쟁이란 곳으로 옮기려고 하였다.그러자 미륵은 눈치를 채고 미리 땅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이에 화가 난 주민들이 연장으로 미륵의 갓을 쳤더니 부러졌다.미륵의 갓이 약간 깨진 것은 그 때문이라고 한다.이에 주민들은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갔더니 미륵이 점점 올라와서 지금의 모양처럼 되었다고 한다.또 다른 이야기로는 미륵을 옮겼더니 현재의 자리가 명당이라서 스스로 걸어서 갔다고도 하고 데굴데굴 굴러서 왔다고도 한다. #굴암사_마애여래좌상. 대덕면 굴암사에는 미륵으로 모셔지는 마애불이 2기가 있다. 굴암사 마애여래좌상과 굴암사 마애선각좌불상이다. 굴암사는 바위사이에 지붕을 덮어 마치 굴처럼 만들어서 굴암사란 이름이 지어졌는데, 최근 2022년에 미륵조사차 방문하였더니 굴암의 지붕을 걷어버려서 이제는 더 이상 굴암의 모습을 볼 수 없게되었다. 수백년 지속된 굴암을 없애는 데는 단 몇일도 걸리지 않았으리라. 옛날 고즈넉한 굴암의 모습을 다시는 볼수없음에 쓰라린 가슴을 안고 되돌아섰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고려시대에 비봉산기슭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에 시달린 스님이 불을 질러 모두 타버려서 산아래 쪽으로 이전한것이 굴암사라고 한다.실제로. 그곳 산에서는 불상의 파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경기문화재단, #대안문화학교달팽이, #푸른노트

Nonprofits & Activism

[안성시미륵- 03서운권역]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을까

Read more [#안성시미륵- 01프롤로그]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나요 안성은 전국적으로 미륵이 많기로유명하여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지금까지 미륵으로 밝혀진 불상이 17곳인데 그중 죽산의 남산미륵과 금광면 먹뱅이미륵은 도난당하여 현재 없으며. 도림리미륵은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속한다.따라서 현재 안성시에남아있는 미륵은 14곳에 위치한 23기이다.기솔리 석불입상이 2 기, 아양미륵이 2 기. 궁예미륵이 3 기 등 쌍미륵이나, 협시불, 사방불 과 같이 4 기가 같이 모셔져서 숫자로는 더 많다. #북산리(서운산성)미륵 1965~ 6년도 경 안성시 서운산에 있는 좌성사를 자주 방문하던 신촌리 사는 민복동 과 박순, 박복동 자매가 현재 자리에 머리만 내어놓고 묻혀 있는 미륵을 발굴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그 후 타 종교 신자들이 정으로 얼굴부위를 훼손한 것을 시멘트로 보수를 하였다고 하며 당시 미륵을 훼손했던 사람은 얼마 살지 못하고 원인불명으로 사망 하였다고 한다.미륵의 뒷면에는 글자가 빼곡히 쓰여 있는데 아쉽게도 마모가 심하여 판독할 수 없었고, 안성시청에서 탁본까지 시도해 봤지만 판독이 불가능하였는데, 자연 마모의 형태로 보아 고려 시대 보다 더 오래된 미륵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남사미륵 석남사마애여래입상의 높이는 5.3m인데 나말여초에 만들었다고 추정만 할 뿐 대개의 마애불이 그렇듯 언제, 누가, 왜 여기다가 불상을 새겨 놓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불상의 전반적인 조각 수법을 볼 때,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하면 발가락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여 놓았다.미륵이 넘어지지 않고 잘 지탱하며 오래도록 중생들을 구원해 주길 기원하는 의미였을까?이 미륵에게 빌면 영험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안성, 천안, 평택, 진천 등에서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미륵의 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험이 있다고 전해져대를 잇고자 하는 욕망은 4m가 훌쩍 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부처님의 코를 갈아내어, 돌가루를 마시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게한다. #서운면. 동촌리 일하는 미륵 서운면 동촌리 미륵은 포도밭 비닐하우스 안에 위치하여 접근이 쉽지가 않다.높이가 큰 미륵은 2m가 넘는 훤칠한 높이이고 작은 미륵은 그 절반의 크기이다.어떤 연유에서인지 포도밭 가운데 2기의 미륵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 1기는 머리가 없는 채 있다. 해 전 가뭄이 몹시 심할 때 방문하였을 당시 답사에서 마을 주민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키가 큰 미륵은 아이들이 쉽게 올라갈 수가 없는 높은위치임에도 아이들이 이 미륵에 올라가서 놀면 비가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하기에 요즘 같은 심한 가뭄에 아이들이 미륵에 올라가서 놀게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묻자 요즘 시골에는 그곳에 올라가서 놀만 한 아이들이 없다고 답하였다.시골 마을의 인구감소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림리. 떠내려간 미륵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에 있는 이 미륵은 안성시 서운면 청룡사 계곡에 세워져 있던 미륵이 조선 시대 물난리가 나면서 입장면까지 떠내려왔다고 한다.하여 ‘떠내려간 미륵’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1999년도 안성 미륵 촬영 당시 노인정에 계시던 분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부터 청룡사 부근에서 떠내려왔다고 들었으며, 이에 따라 서운면 사람들과 입장면 사람들이 소유권을 놓고 한참을 다투었다고 한다. 한편 도림리 미륵이 있는 이곳 서운면과 입장면 포도 농사는 타지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로 풍성하게 수확하는데 이는 미륵의 복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콘텐츠는 인공지능 가상 연기자 서비스, 타입캐스트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출연진: 성호, 주희 https://typecast.ai/kr This content was produced with Typecast, an AI virtual actor service. Characters casted:Sungho, Joohee

Nonprofits & Activism

[안성시미륵- 02죽산권역]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을까

Read more #안성시미륵, #그많은미륵은어디서왔나요 안성은 전국적으로 미륵이 많기로유명하여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지금까지 미륵으로 밝혀진 불상이 17곳인데 그중 죽산의 남산미륵과 금광면 먹뱅이미륵은 도난당하여 현재 없으며. 도림리미륵은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속한다.따라서 현재 안성시에남아있는 미륵은 14곳에 위치한 23기이다.기솔리 석불입상이 2 기, 아양미륵이 2 기. 궁예미륵이 3 기 등 쌍미륵이나, 협시불, 사방불 과 같이 4 기가 같이 모셔져서 숫자로는 더 많다. [죽산권역] #태평미륵 태평미륵이 들어 있는 전각을 용화보전이라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까지만하더라도 용화보전 지붕 용마루에는 청기와가 두 장이 올려져 있었다.이 청기와는 옛날부터 전해오던 보물인데 1933년.. 동아일보 기사에는 몇 년 전 죽산에 살던 불량배가 걷어 갔다고 하였다.현재 올려져있는 청기와는 그 이후에 만든 모조품이다.청기와가 올려져 있는 사찰은 국가나 왕실에서 관할하는 사찰이기에. 그만큼 태평미륵도 예전에 대단한 위세를 끼쳤던것이다.죽산은 옛날부터 불교문화가 찬란하여.. 팔만구암자가 있었다고 할만큼.. 신라고찰의 유적이 매우많아.. 곳곳에. 불상과 고탑등이 산재하던바.. 불량배에 의해 행방불명된것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죽산미륵 이 미륵은 죽산 봉업사지 오층 석탑에서 북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삼층석탑 위쪽 죽주산성 아래에 위치하며 경기도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어있다.원래는 죽주산성 입구에 쓰러져 있던 것 이라는 설도있고 인근에 있는 죽산리 삼층석탑 근처에 쓰러져있던것이라는 설도 있어서 그 진위는 명확하지않다. 원래는 쌍미륵이었으나 다른 한기의 미륵은 없어지고 대좌만 남아있다. 태평미륵과 같이 이 미륵도 마을사람들이 송문주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것이라고 하며, 자손이 없는 사람, 사업을 하는사람 그리고 수험생의 합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비는장소에 속한다. #봉업사지미륵 죽산 지역에는 이 석불입상의 표면 일부를 떼어서 가루를 만들어 물이나 다른 액체에 섞어 복용하면 아이를 낙태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부처님이나 미륵께 비는 것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로 부처님은 아이를 낳게도 해주지만 때로는 없애기도 해주는 모양이다. 이 불상이 있던 곳은 원래 죽산 서울의원옆 관음당 또는 장명사지라고 하는 폐사지에 있었다. 그러나 당시 개인 가정집인 상태에서 불상은 담장 안에 있었는데 1961년 죽산상업고등학교 역사교사가 보존을 위하여 학교로 옮겼다. 그 이후 학교내 불상의 존치가 부적합 하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고 1980년 무렵 칠장사로 옮겨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세미륵/궁예미륵 삼죽기솔리국사암석조여래입상은 고려 후기에 조성한 불상으로 흔히 궁예미륵이라고 부른다. 본존과 양협시 보살을 배치한 삼존불의 형태이기 때문에 세미륵이라고도 부르는데, 가운데에 계신 본존불인 높이 3m가량의 부처님을 궁예미륵이라고 한다. 세미륵 모두 보개(寶蓋)라고 하는 벙거지형 모자를 쓰고 있으며 우협시(가운데 미륵의 관점으로 우협시이니 우리가 보아서는 좌측이다) 보살은 칼 또는 지팡이로 보이는 물건을 가지고 있고 좌협시 보살은 약병을 가지고 있다. 가운데 궁예미륵을 도와 중생들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고 병을 고쳐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협시의 코는 납작한데 미륵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 때문에 없어진 것이다. #쌍미륵 삼죽 국사봉에는 기솔리 석불입상이라고 하는 쌍미륵이 있다.국사봉이라는 이름은 칠장사를 중건한 혜소국사가 이 산중에서 잠시 은거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미륵을 남미륵, 서쪽에 있는 미륵을 여미륵이라고 하는데 애써 방향을 찾아볼 필요 없이 그냥 보면 알 수 있다. 얼굴이 예쁘게 생기면 여미륵, 우람하게 생기면 남미륵이기 때문이다. 이 남미륵을 지역에서는 궁예미륵이라고 부른다.궁예가 891년 세달사를 나와 처음 세상과접한 곳이 죽산이었는데 이때 이따금씩 국사암에 와서 설법하였다고 한다. 남미륵의 입술은 활의 모양과 비슷한데 이로 인하여 한자로 활 궁(弓)자를 쓰는데 이것이 궁예의 상징이라고 한다. 쌍미륵으로 올라가기 직전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무선암 앞에는 미륵으로 모셔지는 마애선각불입상이 있다. 약 2m 높이의 크기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확인할수 있을 정도로 음각선이 희미한 총맞은미륵이 있고, 쌍미륵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무엇인가를 만들다 그만둔 미완의 미륵도 존재 한다. 이 콘텐츠는 인공지능 가상 연기자 서비스, 타입캐스트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출연진: 성호, 주희 https://typecast.ai/kr This content was produced with Typecast, an AI virtual actor service. Characters casted: Sungho, Joohee #경기문화재단, #대안문화학교달팽이, #푸른노트

Nonprofits & Activism

[안성시미륵- 01프롤로그] 그 많은 미륵은 어디서 왔을까

Read more 안성시의미륵,그많은미륵은 어디서 왔나.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대안문화학교달팽이주관으로 기획하고 사진집을 내고 안성의 민중문화를 다룬다. 사진집이 소량으로 비매품이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동영상제작을 만들어 본다. #안성시, #미륵, #태평미륵, #죽산미륵, #칠장사미륵, #선유리미륵, #세미륵, #궁예미륵, #쌍미륵, #서운산성미륵, #석남사미륵, #동촌리미륵, #죽리미륵, #대농리미륵, #굴암사미륵, #아양미륵, #낙원공원미륵, #용화사미륵, #구장리미륵, #총맞은미륵, #떠내려간미륵, #누워있는미완성미륵, #경기문화재단, #안성시, #그많은미륵은어디서왔나 안성은 전국적으로 미륵이 많기로유명하여 미륵의 고장이라고 불린다.지금까지 미륵으로 밝혀진 불상이 17곳인데 그중 죽산의 남산미륵과 금광면 먹뱅이미륵은 도난당하여 현재 없으며. 도림리미륵은 행정구역상 천안시에 속한다.따라서 현재 안성시에남아있는 미륵은 14곳에 위치한 23기이다.기솔리 석불입상이 2 기, 아양미륵이 2 기. 궁예미륵이 3 기 등 쌍미륵이나, 협시불, 사방불 과 같이 4 기가 같이 모셔져서 숫자로는 더 많다. 이 콘텐츠는 인공지능 가상 연기자 서비스, 타입캐스트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출연진: 성호/주희

Nonprofits & Activism

The Rhapsody 2021, Intro

Read more 2017년 Rhapsody 를 시작으로 하여 매년 계획하였지만, 실현해 내지 못하였다. 기존의 우리들이 해왔던 것들을 벗겨내기 위해 2021년 다시 모였다. 전라남도 여수, 돌산 자연예술학교에서 랩소디전이 이뤄진다.

Nonprofits & Activism

the Rhapsody 2021, Yeosu

Read more the Rhapsody 2021전이 여수시 돌산자연예술학교에서 강신호(사진), 박성태(사진), 설치(조각), 정원주(회화)의 작품이 전시되고 오프닝의 모습을 담은 영상임

Nonprofits & Activism

Insight Geumo-Do( Extinction & Rebirth)

Read more The Story of Geumo-do Island .

People & Blogs

bluenotephoto.com, photography, landscape, portrait, documentary, still-life

푸른노트의시그니처

​의  BLOG /tistory

푸른노트(BLUENOTE)의 Portal Service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bottom of page